제주살이 #107: 인생 재미 지네(Sentip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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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삑사리 나듯
우유 자빠지는 소리가
남도 아닌 내 입에서
흘려 나올 줄 상상도 못 했다.
분명 살갗을 무는
느낌 같은 느낌에
놀란 거 나이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는데
그게 모기가 아니라
지네한테 물러 따끔한 것이다.
발밑을 내려보니
새끼손가락 길이의 얄팍한 지네가
뱀이 또아리를 틀듯 둥그렇게 몸을 만다.
이게 다 뭔 일인가? 싶다가 뜨악하다.
지가 물어놓고 부끄부끄 부끄러워하니 어이가 없다.
아니 여기는 1층도 아니고 2층인데
이놈이 오또케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당최 모르겠다.
아마도 각개 격파 임무를 배당받은 침투조가
배수관이나 문틈으로 열심히 박박 기어들어왔나 보다.
제주에 와서 살다 보니
온갖 벌레들이 집안으로 다 들어온다.
거미, 개미, 바퀴벌레, 노린재, 파리, 초파리... 등등을 비롯해 지네까지
서울에서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지들은 반갑다고 놀려오는지 몰라도
난 진짜 하나도 반갑지 않다.
내가 아무리 성격이 좋고 하해같이 넓어도
애네들과 한 지붕 아래 같이 지네 거나
동고동락을 하기 1도 싫다.
이놈들이 출현할 때마다
보이는 족족 떼끼 떼끼 잡아 족치는데도
행불자보다 신출귀몰한 놈들이 더 많은지
줄어들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놈들도 뭐라도 먹고살려고
2층까지 행차하는 거겠지만
나야 뭐 모른 척 눈감아줄 수는 절대 없다.
앜~! 물린 자리가 점점 아파지네!
괘씸한 생각에 똥 쌀 때처럼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둘둘 말아 꾹. 눌러본다.
영어로는 Bathroom tissue 또는 Toilet paper,
한국말로는 두루마리 휴지 몇 장 두께 사이로
뭔가 툭. 터지는 느낌이 전해 지네.
유한킴벌리 3겹 재생휴지로
고급지네를 돌돌말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볼 일 다 보고
집 밖으로 나가는데
계단을 열심히 올라오는 지네와 딱. 마주쳤다.
지네도 먹고살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등산 아니 계단을 오르는 걸 보니
참 다들 열심히 산다 싶다.
인생 재미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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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Sentipede)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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