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125: 제주 월드컵경기장 주위를 성큼성큼 걷다 · · 제주 월드컵경기장을 3바퀴 정도 돌 때 보니 주홍색 철문이 위로 조금 열려 있는 곳이 있다. 제주 월드컵경기장 실내는 오또케 생겼냐? 궁금한 나머지 호기심에 머리를 숙인 채 쏘옥 들어가 본다. 발을 디밀어 노란색 중앙선을 넘어 들어가자마자 "경고 경고"라는 멘트가 방송된다. "당신은 지금 반칙입니다." "뭔, 개솔?" 오징어 게임이 시작되면 문이 닫히고 두번 다시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등짝에 소오름이 가시처럼 돋는다. 어디에 있는지 보이진 않지만 수많은 총기 구멍들이 나를 향해 영점 조준을 하고 있는 듯하다. 시급해. 더 들어가지도 못하고 쫄아서 얼른 밖으로 돌아 나오자 언제그랬느냐는듯 제주 월드컵경기장내는 입을 꿰맨 듯 조용하다..
제주살이 #110: 새벽바람(Dawn Wind) . · 저 멀리 법환 바다에서부터 힘껏 달려와 냅다 문을 쿵~! 차고 들어온 놈이 내 두 눈과 찌릿하고 마주치자 쏜살같이 창문으로 도망쳤다. 덜커덩~! 이게 뭔 일인가? 싶어 화들짝 놀래 잠이 다 깼다. 비몽사몽에 창문을 닫고 침대 자리에 누우니 이번엔 이방의 사촌뻘 되는 모기가 귓가에 잉잉 날아다니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거기다 한술 더 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발정 난 고냥이가 창밖에 서 있다. 쉬지 않고 창틈을 헤집고 들어오려는 앙칼진 소리에 잠을 못 이루어 뒤척거린다. 왜~앵! 원망의 신음소리였고 신세 한탄의 울음이었다. . ·
제주살이 #101: 제주 서귀포 법환바당 · · 거센 비바람으로 금방이라도 온천지를 끝짱 낼 듯 용쓰던 힘난노 태풍의 그림자가 서귀포를 벗어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해가 쨍하다. 밤새 창문을 덜컹덜컹 물어뜯던 그 바람은 거짓말처럼 잠잠하고 억수로 퍼붓던 장대비는 싹. 멈추었다. 과연 세상에 성한 게 있을는지 싶을 정도록 태풍이 지나간 자리마다 나뭇가지가 뚝. 뚝. 부러져있고 나뭇잎이 즐비하게 나뒹굴고 있다. 바다와 맞닿은 법환포구로 가는 막숙포로 길가에는 무심해 보이는 잠자리 떼가 앉을 자리를 찾아 뱅뱅 맴돈다. 폭풍이 법환 바당을 프라이팬의 달걀을 뒤집듯 수백수천 차례 크게 뒤집어놓았다고 얼굴색이 하얗게 질린 듯 비리비리한 게 코발트블루(Cobalt Blue)에 옐로 오커(Yellow Ochre)를 섞..
제주살이 #96: 제주 소철꼬리부전나비 · · 8월이 끝나고 9월이 시작하는 첫날 법환바다 나들목에 앉아 햇빛에 반짝이는 잔물결을 바라보며 하늘멍 바다멍 하는데 나풀나풀거리며 다가온 나비가 살며시 손안에 앉았다. 조개를 포개어 놓은 듯한 소철꼬리 부전나비가 부처님 손바닥 안에 뛰어노는 손오공처럼 나빌레라 춤을 추는데 귀여운 짓 이쁜 짓을 저 혼자 다한다. 그런데 그게 무대가 원래 자기 자리인양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웠다. 이대로 그냥 인정하기 싫어 애벌레가 소철 잎을 먹고 자라 누렇게 바랜 것이 다 너들 때문이라며 미주알고주알 거리자 '응, 아니야!' 살래살래 고개를 흔든다. "아, 진짜?"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금방이라도 꺼질 듯 한들한들거린다. · · 소철꼬리부전나비(Chilades Pandav..
제주살이 #87: 제주 서귀포 김정문화외관 앞 가을소리 · · 짠~! 하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노래하는 온갖 벌레소리에 귀가 다 호강한다. 대청로에서 김정문화로 이 구역에서 제법 노래 좀 한다는 귀뚜라미, 방울벌레, 베짱이, 여치, 말매미, 풀매미들이 김정문화로 김정문화회관 앞에 다 모였나 보다. 나만 7ㅏ수다! 출연 섭외를 받았는지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따로 없는데 엎드려뻗쳐서도 목 풀기를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목청껏·힘껏 노래를 가을 가을 하게 참 잘한다. · · 말매미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74XXXK002289 말매미 몸길이 40~48mm, 날개 끝까지 60~70mm 정도인 대형종이다. 몸은 광택이 나는 흑색이며 신선한 ..
제주살이 #68: 제주 서귀포 신시가지 강정동 소철나무꽃 · · 금빛으로 빛나는 소철나무 꽃은 100년에 한 번 화들짝 핀다고 한다. "아, 진짜?" 그런데 울 집 앞 소철나무는 작년에 피고 올해도 피었다. 그럼 애는 바람이 난거니? 아니면 다음 100년치를 미리 꽃 피우는거니? 니들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암만 그래도 100살 먹은 소철이 치매에 걸려 작년에 핀 걸 깜빡했다는 그렇고 그런 설이 유력해 보인다. 도대체 100년의 정의는 뭘까? 그만큼 보기도 어렵지만 살기도 어렵다는 거지. 그러니까 꼭. 100년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한 여자만 평생 사랑할 거라는 약속처럼 그렇지 않으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말처럼 말삥이고 말뿐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
제주살이 #67: 수근수근 거리는 수국은 염색머리다. · · 누가 볼테면 보라고 서귀포 막숙도로가에 한 땀 한 땀 심어둔 수국 길 따라 천천히 걷는데 어디선가 소곤소곤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말인가?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귀 기울어 들어보니 얼핏 보면 이수근으로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서장훈으로 보이는 성은 노요 이름은 숙자가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듣고 있는 것이다. 아 진짜? 씨알이 튼실한 산수국과 등수국에 비해 수국은 일본인이 이쁘게 만든다고 품종을 개량해 지금의 수국으로 만들면서 암술과 수술이 싹뚝. 거세를 당해 씨가 없는 석화가 되었다.라고 한다. 응, 그래! 이런 걸 보고 그림의 떡이라고 공자와 맹자 다음 숙자의 가르침인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수국의 꽃잎은 달걀 껍데기처럼 꽤나 ..
제주살이 #62: 서귀포 강정동 스트렙토카르푸스? 아니 체리세이지! · · "까똑!" 딸아이가 카톡으로 사진을 하나 딸랑 보내왔다. "아빠 이게 무슨 꽃이야?" 제발 쪼그맣고 앙증맞은 이 꽃 이름이 뭔지 신속 정확하게 바로 알려달란다. 아빠가 무슨 척척박사도 아니고 자기가 찾아보면 되지 되지 돼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앤 맨날 왜 이래!" 은근히 좋으면서 생색내듯 투덜투덜거려본다. '왜 나한테 물어보겠어! 그렇게 해서라도 아빠랑 대화를 하고 싶은 거지. 응, 그렇고 말고.' 보내준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띄워놓고 네이버 스마트 렌즈 검색 기능을 활용해 사진을 뙇! 찍어보니 '스트렙토카르푸스'를 당당하게·자랑스럽게 스마트폰 화면에 떠~억! 하니 꺼내놓았다. 네이버 욘석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
제주살이 #61: 제주 서귀포 법환동 동네밤마실 · · "켁. 케엑. 케~켁!" 꿩 점마가 사래가 걸렸나? 코로나19 오미크론에 걸렸나? 노인네처럼 쉬지 않고 잔기침을 한다. "분명 꿩소리인지 설마 저게 개솔은 아니겠지?" 긁적긁적 6-.-; 아이스커피가 급 땡겨 카페 벙커하우스에서 냉커피 하나 사갖고 나오자 오또케 된건지 이제는 꿩 소리가 안 난다. "그새 뒈졌나? 아니 자니?" 바닷가 안쪽 공사중인 도로에 서 있는 해녀 언니는 오징어게임처럼 숨바꼭질이라도 하는지 길을 등지고서 나무에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기도 중이다. 어제 술 먹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 옆에 옆에 옆에 낮은 돌담사이 틈바구니로 빠져나가는 게 어제 술 먹던 사람들이 구찮았는지 게 중에 어떤 혹자가 오늘은 술 먹는데 방해받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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