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177: 콧물감기
·
·
평소 아침운동으로 걷기를 하다가
무슨 바람이 불어
새벽 6시 수영장에 갔다.
사실은 연모하는 긴머리 소녀가
제주 혁신도시 복합혁신센터 수영장에 다닌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물이 좋아 산이 좋아 산타는아저띠도
당근·말밥 물 좋은 곳을 찾아
알게 모르게 떡 벌어진 어깨에 잘록한 허리,
이두박근과 식스팩을 은근 슬쩍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S자가 크게 그려진
슈퍼맨 빤스를 입고
물에 들어서는 순간
기침이 나올 정도록 졸 춥다.
으스스한 게 아주 기분 별로였다.
아, 이건 아닌데 싶었다.
코가 간질간질한 게 조짐이 있어
집으로 가는 길에
몸에 열이 나라고 후다닥 뛰었다.
이겨내!
이길 수 있다.
반복적으로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골때녀 이현이의 말만 백퍼 믿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중얼중얼 세뇌를 시킨다.
"콜록콜록"
열이 나는 게 아니라 천불이 났다.
좀 전까지 정신이 신체를 지배했을는지 모르겠지만
감기는 정신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콧물이 대책 없이 줄줄 흐른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조제한 감기약을 일찍 감시 먹고
보람찬~! 하루의 일과를
신속·정확하게 끝내기 위해
전기장판을 켜고
꿈속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일찍감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캐시미어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불변의 마음'이라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는 걸로 믿고 의지하며 당연시했으나
신체의 일부인 콧구멍에서 콧물이
수돗물처럼 콸. 콸. 흘려
두루마리 휴지로 콧물을 닦다 볼일 다 봤다.
기침과 콧물로 잠을 못 잘 정도라
금세 침대아래에 소이현 남편 인교진
아니 구겨진 휴지가 즐비하다.
차라리 혈기왕성했던 청소년 시절
울끈불끈 한 불타는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
힘 빼고 자기 위한 짓이라면 천만다행이겠지만
고작 콧물 때문에
자다가 이 무슨 봉변인지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린이 신체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신체가 정신을 지배하는지 점령당한 건지
멕을 못 추겠다.
흐르는 강물 아니 흐르는 콧물.
을 당췌 이길수가 없다.
어떻게 하든 잠을 자보려고
서귀포 내 가봤던 식당 김고기, 바삭 돈까스, 남호식당...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도 세어보고
도로표지판도 생각해 보고
별의별 걸 다 생각해도
콧물을 막을 순 없는지
콧물 때문에
절대 잠이 안 온다.
하아...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
는 개뿔 신체가 정신을 지배한다.
남자가 흘리면 안 될 콧물이
밤새 흘려 넘쳐 배게를 적셨고 그 바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살다 살다 콧물 때문에 밤을 새울 줄 몰랐다.ㅜ.ㅜ
해마다 년례행사처럼 감기에 걸리지만
반백년을 살면서 이런 콧물감기는 첨이다.
"제주도에서 감기를 이길 수 있겠어요?
절대 못 이겨~~!"
라고 최민식이 말해준다.
"대리님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다 우리잖아요!"
"아, 우리..."
그렇게 감기와 난 혼연일체가 되었다.
·
·
제주혁신도시복합혁신센터 수영장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호남로 25 (우)63568
https://place.map.kakao.com/1728477808?referrer=daumsearch_local
제주혁신도시복합혁신센터 수영장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호남로 25 (서호동 1604)
place.map.kakao.com
'제주를 더 제주답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살이 #179: 제주 서귀포에서 유채꽃이 젤 먼저 핀 산방산 (46) | 2023.03.08 |
---|---|
제주살이 #178: 노란색 코감기 (38) | 2023.03.02 |
제주살이 #176: 횡단보도 위 낙엽은 어디에 (27) | 2023.02.27 |
제주살이 #175: 세탁에서 건조까지 일사천리로 LG전자 드럼세탁기 건조기 (34) | 2023.02.23 |
제주살이 #174: 바람부는날 듣기 좋은 노래 (37) | 2023.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