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193: 잡초제거와 풀 뽑기 당근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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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픽션이래도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면
진지한 삶의 현장 경험을 해봐야 맛깔스럽고
뭘 알아야 타당성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어
타 직업 알바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제주도 알바는 대부분이
식당과 카페가 7~80퍼센트다.
식당 설거지와 청소는 남자라서 거절
카페 알바는 나이가 많아서 거절
나머지 2~30프로는
버스로 출퇴근이 1시간 이상 걸리는 가능한 거리에 있고
자차가 없으면 사실 어렵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말밥인 당근에서
며칠 전 초보자도 가능하다고 해서
이번에도 안 될 줄 뻔히 잘 알지만
미친척하고 척. 척. 척. 지원했다.
아, 글쎄 홍도야 우지마라!면서
잡초 뽑기 알바를 신청했는데
오~홍! 당첨되었다.
이게 뭐라고 로또 당첨처럼 신났다.
왜냐하면?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알바 신청을 하면
나이가 많아서 남자라서 번번이 거절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좌절감을 뜯고 씹고 맛보고 있었는데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1일 10만원,
3일치
잡초 뽑기와 풀제거'
당근에 알바를 내놓은 업체에서
떠억! 하니 오라고 하니 이게 웬 떡! 이냐 싶다.
당일 오전 7시 45분
카카오맵에 버스 도착 시간이 안 떠 족됐다 싶다.
딸아이한테 전화해
건강과 성박물관까지 태워달랄까? 망설이는데
마침 버스안내 전광판에 202번이 깜빡깜빡 거리며
바로 도착을 알린다.
차암 다행이다 싶다.
7시 50분에
성산하이츠빌라 앞에서 202번을 타고 추~울발!
뭔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오늘 하루가 잘 풀릴 듯하다.
오전 9시부터
안경을 쓰고 후드티를 뒤집어쓴 팀장님이
정해준 구역으로 쏙. 가서
포크처럼 생긴 장비를 주고
잡초 제거를 하라고 해서
나름 풀 뽑기를 하고 있는데~ 있는데~
안경을 쓰고 똥똥하게 생긴 아저띠가 다가와
토끼밥?처럼 생긴 잡초 제거 방법을
아주 자세히 친절하게 쓱. 알려준다.
얘네들은 옆으로 이어져 뿌리를 내린 것들이라
힘으로 쥐어뜯는 게 아니라
뿌리째 살살 긁어모아
원뿌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아주 부드럽게 온유하게 싹. 알려준다.
말이 쉽지! ㅠ.ㅠ
그 이후 한참을 땅에 웃자란 푸르탱탱한 것들을
이리저리 요래조래 솎아내고 있는데
어디서 그걸 가만히 지켜보다
그게 나 원 참 답답했는지
안경을 쓰고 똥똥하게 생긴 아저띠가 재차 다가와
이렇게 이렇게 원뿌리를 제거해야 한다며
흙속에 파묻혀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
삼산뿌리 같은 걸 캐낸다.
와우~! 유레카!
"봤지? 봤어!"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잘해보라고 격려해 준다.
"늬예 늬예"
대답을 시원하게 해 주고
삽질 아니 포크질이 서툴러 잡초를 쥐어뜯자
다시 다가와 한마디 한다.
"자넨 아무래도 안 되겠어.
너어~~~무 못해 소질이 없어."
"..."
"전에 무슨 일 했냐?"
"디자인을 했습니다.
이런 디자인 저런 디자인 "
"..."
"SNS홍보도 좀 하고요.
블로그에 글도 좀 쓰고요..."
"..."
"사장님이 갖고 계신 호미를 제게 주실래요?"
옛따! 선심.
"잘해보게!"
그렇게 1도 쉬지도 못하고
화단 둘레 잡초를 제거하다 보니
점심시간 12시다.
팀장님 인솔로 창영띠와 같이
000에서 돼지국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식후
어림짐작으로 봐도 200개가 넘어 보이는
수국을 담은 큰 화분 50여 개를 트럭에 실었다 내려
출입구 담벼락 구멍에 쏙. 쏙. 집어넣는데
1~2시간 걸렸다.
만지면 똑. 부러지리
그 허리가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약속했던 업무 시간이
9시에서 6시까지라
화분을 옮긴 이후
오전에 하던 잡초제거를 했다.
이러다 잡초제거 풀 뽑기 고수가 되지 않을까?
은근 걱정이 된다.
작다면 작고 넓다면 넓은 이곳에서 하루치 양만으로도
곧 저 세상으로 갈 거 같았다.
나름 칼퇴를 선호해서
오후 6시
지금 당장 퇴근해
'건강과 성 박물관' 앞 정류장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202번 버스가 바로 왔다.
제주 와서 첫 알바에 바깥일이라 대다.
느무느무 힘들지만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닷가에 들렸다.
법환바다로 나오니
무지개가 떠억 하니 걸려있다.
떡 무지개!
무지개떡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고 집에 오니
머리어깨무릎발무릎이 다 아프다.ㅠ.ㅠ
갑자기 무리한 완력을 사용해 근육이 놀랐는지
허리와 목과 어깨 사이가 유난히 아파
파스를 4개씩이나 따다닥! 붙였다.
그깟 호미질에 손마디 마디 관절이 다 아픈 게
지금 당장 콘드로이친을 먹어야 될 듯하다.
아, 옛날이여~!
노래처럼 세월이 야속하다.
군에 가기 전 2~3개월 노가다 이후
올만에 해보는 막일이라 존마이 힘들었나 보다.
목과 허리가 뻣뻣 해 잘 돌아가지 않고
뻐근한 게 곧 골로 갈 거 같다.
보험이라도 들어둘걸 후회되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약값이 더 들 듯.
어쨌거나 저쨌거나 하루 일당 받으면서
잡초제거와 풀 뽑기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기술도 배우고
몸은 고되지만 좋은 거 배웠다.
쿨. 쿨.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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