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220: 화장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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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제주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장실 오물 투척 사건으로
상가 내 입주한 임차인들이
너두 나도 난리법석이다.
상가 건물 관리자가 단톡으로
퇴근 시 상가 내에 있는 화장실 문을
주먹만 한 크기의 회색 자물통으로
꼭. 잠그고 다니라고
묵직한 잿빛 부탁을 한다.
"응, 그래!"
이후 출퇴근 때마다
화장실 회색 자물통이
굳건하게 단단히 잘 잠겨있었다.
한동안 화장실이 문제없이 잠잠하다 싶었는데
오잉? 이번엔 자물쇠 도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아니 자물쇠가 왜 없지?
조용하다 싶었다."
"이젠 자물쇠도 훔쳐가나?"
머리를 벅벅 긁게 된다. 긁적긁적6-.-;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대단한 큰 일을 보려
화장실에 꼭. 가고 마는데
좌변기에 걸터앉자마자
휴지걸이 밑바닥에 세워져 있는
내 주먹 만한 회색 자물쇠가 뙇! 보인다.
"자물쇠에 다리가 달린 것도 아니고
아니 애가 왜? 여기와 있데?"
나올 때 자물통을 자물쇠 걸이에
척. 하니 착. 걸어놓는다.
"나 왜 이렇게 착하지?" 쓰담쓰담
그런데 이런 일을
한 두 번이 아니라
자주 목격하게 되고
같은 짓을 되풀이하자
뜨악한 궁금증이 생긴다.
도대체 누가 자물쇠를
매번 화장실 좌변기 옆에 갖다 놓게 되었을까?
그런 의심을 갖던 차
어느 날 배가 살살 아파와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서는 순간
밖으로 나오려던 존믓찐 학생과 부딪칠뻔했다.
"엄훠! 애 떨어질 뻔했네!"
"노~놉!"
바로 그때 시간이 멈춘 듯
학생 손에 들려있는 아령 같은 자물쇠가
천천히 클로즈업된다.
"넌? 자물쇠!"
"어 안녕? 나는 조나~~~단호한..."
"아, 네넨!"
아참 내가 배가 아파 화장실에 왔지.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
좌변기가 있는 칸막이 문을 열고 얼른 들어섰다.
쿵~!
점마가 왜 자물쇠를 들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합리적인 추론이 성립된다.
평소 겁나 내성적인 소년은
배가 아파 좌변기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데
퇴근하는 어느 상가 사람이
화장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밖에서 자물쇠를 덜커덕 잠가버렸다.
한참 응가 중이던
내성적인 성격의 소년은
여기 사람 있다고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불부터 끄고 보자고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나라도 그랬을 꼬얌!
암, 그렇고 말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간신히 볼 일을 마치고
혹시나는 혹시나군 호윽시 싶어
화장실 문을 열려는 순간
역시나는 역시나군 여윽시 잠긴 걸 알고
문을 연신 두들긴다.
탕. 탕. 탕.
"문 좀 열어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당근 말밥 아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다 갇혀 죽겠다 싶은 소년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사람 살려주세요!"
라고 몇 번이나 계속 소리를
꽥. 꽥. 지르지만
1분이 가고 10분이 지나도
아무도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자
공황에 빠진 소년은 어쩔까? 망설이다
곧바로 학원으로 전화를 한다.
다행히 학원 선생이
화장실 키를 갖고 찾아와
화장실에서 구출되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화장실에 갈 때마다
자물통을 갖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학원만 오면
공부에 대한 강박관념과 스트레스로 배가 살살 아파
화장실에 가게 되는 소년에게
화장실 자물통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의 요인이 된 것이다.
문제는 자기가 자물통을 갖고 들어갔으면
나올 때도 반드시 들고 나와야 하는데
볼 일만 보면 자물쇠를 깜빡하는지
매번 자물통을 들고 나오지 않으니
항상 좌변기 휴지걸이 밑에
주먹만 한 크기의 회색 자물통이
자기 집인 양 놓여
보라색의 그림자를 드리웠던 것이다.
"맞나?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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