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221: 물총놀이(water gun game)를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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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살살 아파와 급히 화장실로 쫄래쫄래 가는데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아이가 후다닥 계단을 뛰어내려 가며
"하. 하. 하. 하."웃는다.
곧이어 다른 꼬마가
"야, 거기 안 서!"소리치며
앞서 도망친 녀석을 따라 계단을 뛰어내려 간다.
"아, 색히들 시끄럽게..."
화장실로 들어서자
누가 물청소를 했는지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엊그제 청소업체가 왔다 갔는데
또 물청소를 했나?
청소를 하는데 물기가 없게 해야지
이딴 식으로 청소를 하려면 왜 하는지 모르겠다.
무튼 바닥에 물이 튕겨 바지나 신발이 젖지 않게 살살 걸었다.
2곳 중 어느 곳으로 들어갈지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어느 곳이 좋을지 알아맞혀 볼까요?"
딴엔 오른쪽이 괜찮을 것 같아
문을 열고 들어가 걸쇠를 잠그고 보니
좌변기에도 물이 흥건하다.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치?
설마 오줌은 아니겠지?
좌변기 엉덩이 닿을 부분을 휴지로 닦은 후
좌변기 안에 쏙. 버린다.
좌변기에 앉자마자
늘 그러듯이 빨리 나오지 않는 님을 속히 보기 위해
두 손으로 아랫배를 걸레 짜듯 꽉. 쥐어짜는데
여엉 신통찮다.
2번째 방법으로 꾹. 꾹. 꾹꾹이를 해본다.
"첨벙~!"
좌변기에 큰 거 한 방이 떨어진 게 아니라
머리에 힘 준 내 머리카락에 물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아주 작디작은 물방울이.
탄지신공으로 정수리에 물총을 쏘았는지 머리가 띵~! 하다.
천정에 비가 새나?
뭔 일인가? 싶어 위를 올려다보니
천정에 물방울이 아롱아롱 맺혀있다.
제각각 뿔뿔이 떨어져 있던 물방울들이
표면장력에 의해 가까운 것들끼리 합쳐져
제법 덩치를 불린 후
중력의 법칙에 따라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녀석이 결국
꺅~!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체불명의 물이
머리 위로 계속 똑. 똑. 떨어진다.
옥상에 누수가 되는 건 아니고
바닥에 물이 흥건했던 게
누군가 수압이 센 샤워기?로
좌변기 천정에 물을 쏘아대었다는 것이다.
아까 계단 아래로 헐레벌떡 뛰어내려 가던 두 녀석이 생각났다.
추측하건대 학원 상가 아이들 중 하나가
좌변기에 앉아 볼 일을 보고 있으면
다른 친구가 장난으로 짓궂게 물총 놀이를 했나 보다.
왜 남자아이들은 물총놀이를 좋아할까?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이런 유희적인 놀이의 몸짓이
성장하면서 이성이라는 궤도 탐구로 바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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