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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 #112: 베토벤의 운명 놉! 애벌레의 운명 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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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연의 법칙에 따라
벌레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걸 
누구보다 뻔하게 뻔뻔하게 잘 알고 있다.

그 잘난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듯이
벌레들의 유전자 코드에도 
자기 자신이 벌레라는 걸
대견해하고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도한 오또케 하면 씨를 뿌리고 먹고 사랑해야 하는지 
혹자가 가르쳐주고 알려주지 않아도 다 안다.

신기하지?

동족상잔 혈육과의 싸움을 피해 
가느다란 실을 이용해 최대한 멀리 날아가야 한다는 걸 잘 알기에
장검을 뽑듯 똥꼬에서 가느다란 실을 온 신경을 집중해 
천천히 실을 뽑아낸다. 

주위 사위가 멈춘 듯하고 억겁의 시간이 흐른 듯하다.

나무줄기에 메달린 채 그네를 타듯 바람에 제 몸을 맡긴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흔들흔들거린다.

어느 순간 
아니 빨갈 적생등이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자
지금이다 생각하자
줄이 툭. 끊어졌고
거미줄을 이용해 낙하산처럼 바람에 날린 채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그냥 그렇게 하늘하늘 날아가다 보니
바닥이 온통 까만색의 아스팔트 8차선 도로 위를 지나가고 있다.

검은색의 도로는 복사열로 활. 활. 타오르는지 
아지랭이처럼 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연약한 피부가 금방이라도 익을 듯 뜨겁다.

최대한 멀리멀리 날아가야 되는데
바람이 뚝. 끊어지듯 멈췄다.

아, 신발!

신발 한 짝이 바닥에 뚝. 떨어져 있다.
관성의 힘으로 신발 한 짝보다 멀찌감치 나아가다 
횡단보도 한복판에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신발을 찾으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라 
포기할 땐 또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게 
포기의 법칙인지라
얼른 포기하고 나아가는 방향으로 기어간다.

앗 뜨거워! 아, 뜨거워!

소핫! 

온몸을 이용해 머리어깨무릎발무릎 순으로 
위아래 위아래 요동을 치며 건너편을 향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간다.

고지가 저긴데 조금만 더 가면 돼 맘을 다 잡아보지만
너무나 힘들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온몸이 땀으로 다 젖었다.

한 뼘만 더 가면 인도가 있는 보도블록에 다가갈 수 있는데
하필이면 눈치코치 없는 인간이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며 지나간다.

휴 다행이다.
간신히 살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운다.

쌩=3 자전거 하나가 지나가자 
아스팔트에 있던 애벌레가 안 보인다.

애벌레는 납작한 빈대떡이 되었는지 
돌아가는 자전거 뒷바퀴에 붙은 애벌레가 크게 클로즈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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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
제주살이 #112: 베토벤의 운명 놉! 애벌레의 운명 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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