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186: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죽었니? 살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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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시간이 되어
2층에 있는 수술실로 마눌을 들여보내고 나니
동행인은 밖에 보호자 대기석에서 기둘리라고 한다.
"응, 그래!"
1시간이나 지났을까?
옆 수술방에 있던 사람이 수술 중 죽었는지
침통한 얼굴로 보호자에게 장례 절차를 준비하라고 한다.
월래 원래 강원래 오늘내일하던
죽기 일보 직전의 사람이었겠지라고
나름 위안 삼아 혼잣말을 해보지만
갑자기 무서워진다.
수술이 잘못되어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손발이 떨려오고 가슴이 콩닥 거린다.ㅜ.ㅜ
2시간이면 된다고 했던 수술은
어느새 3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이거 분명 뭐가 잘못되었나 싶다.
입안이 바싹 말라오고
앞이 깜깜하게 느껴진다.
항상 남의 편이었던 내게
언제나 내 편이었고
평생의 동지이며 반려자가
수술 중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핑 돈다.
보호자 대기석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데
자동 유리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마눌이 누워있는 침대가
살살살 기어 나온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죽었니? 살았니?"
이 와중에도 농담이 다 나온다.
마눌은 불행 중 다행으로 살아 숨 쉰다.
"결코 죽지 않아!"
어디선가 Helloween의 'I'm Alive'가 들리면서
다 쓰러져가던 나를 발딱 일으셔 세웠다.
마취가 안 풀렸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마눌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4층에 있는 입원실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없다.
마취가 안 풀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을 때만 해도
의식이 돌아오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가능할 거라 생각했나보다.
마취가 풀리고 잠에서 깨어난 마눌은
크나큰 진통을 호소했고
먹는 게 1도 없어도 많은 양의 수액 주사로
배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수술 후 통증으로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화장실에 가는 거는 언강생심
뒹구는 거조차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런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알았는지
고맙게도 친절한 김** 간호사가
임시방편으로 쓰라고
큰 사이즈의 기저귀와 소변용 기저귀를
몇 개를 가져다주었다.
딸 아들 똥기저귀 갈아주던 수십 년 전 기억을 소환해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해 벌벌 거리는 마눌님의
배변 활동을 한 똥기저귀를
낑낑거려가며 여렵사리 갈아주자
고마운지 미안한지 자기 자신이 초라한지
울고 자빠졌다. ㅜ.ㅜ
아픈 거에 대한 서려움,
부적절한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
미운 남의 편 놈의 고마움 등등
온갖 것들이 짬뽕인지 비빔밥인지 되어
왈칵 눈물 짓게 했나 보다.
그렇게 수술 후 첫날은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어
다 큰 어른이 특대형 기저귀를 찼다.
르 후로도 마눌은
밤새 수술 후 진통으로 앓아누웠고
그게 속이 불편한지 미슥거리고 토할 거 같아
주사를 맞았다 안 맞았다 하니
김국진이 밤새지 마라! 했는데도 불구하고
밤을 샜다.
밤에 잠을 못 자니 낮에는 잠만 자는 거 같다.
수액과 진통제 등등 여러 가지를 맞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먹는 게 없어도 잦은 기저귀 교체로
얼마 안 가 모자라겠다 싶어
얼른 서귀포 열린 병원 건너편에 있는
거산 의료기 보청기 판매점에 가
성인 환자용 특대형 기저귀 10개짜리를
만천 얼마에 사 왔다.
다 큰 성인을 간병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더라.
아픈 자녀를 둔 부모님이
거동이 불편한 노모노부를 간병하며 보살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 아주 쬐끔 알 거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간병인을 자처한 배우자라고
환자 옆에서 잘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아
졸리다고 간이침대에서 틈틈이 잔다.
배변으로 기저귀 교체,
주사 때문에 수시로 들락거리는 간호사와
병실 안 다른 환자들의 움직임으로
깼다 잤다를 열댓 번을 반복하니
내가 잔 건지 깬 건지 아주 비몽사몽이다.
밤새 기저귀를 4~5개는 사용한 듯
그러거나 말거나
담날 아침 낑낑거리며 일어나 수술 후 첨으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겠다고
좌변기에 앉았다 일어나는데
식은땀이 질질 흘렀다.
그래도 기저귀 교체에서 해방되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쓰다 남은 기저귀는 따로 쓸데가 없으니
서귀포 의료원 붙박이 간병인이나 간호사들에게 주고 가야긋다.
생각으로 병실 창밖을 쳐다본다.
저 멀리 흰구름으로 모자를 쓴 한라산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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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료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장수로 47 (우)6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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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료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장수로 47 (동홍동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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